방정환 다시 새롭게 쓰기는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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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숙 경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창비어린이 편집위원)
1. 방정환의 전기부터
제가 어릴 때 가장 재미있게 읽은 위인전 중 하나가 바로 방정환이었습니다. 보통 위인전이라 하면 보통 사람들은 범접하기 어려우리만큼 대단한 태몽부터 시작하여 배경, 성장 과정, 천재성 등에 기가 죽기 마련인데 방정환의 전기는 재미난 인물이 나오는 동화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신식학교 교장 선생님의 꼬임(?)에 빠져 댕기머리를 싹뚝 잘린 뒤 머리를 달랑달랑 들고 오니 집안 식구들이 대성통곡을 하였다거나, 그때는 귀했던 환등기를 가져다 동네 사람들에게 활동사진을 보여주고 변사 흉내를 냈다거나, 동무들을 모아서 ‘겨울이 좋냐 여름이 좋냐’ 밑도 끝도 없는 토론회를 벌였다거나 하는 개구쟁이 일화가 재미있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집안이 갑자기 기울어 고학생이 되었고, 청년이 되어서는 어린이 운동에 뜻을 두고 구연동화를 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이야기를 얼마나 재미있게 했는지 아이들이 자리를 떠나지 못해 고무신에 오줌을 쌌고, 감옥에 갇혀서도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해서 간수들도 반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뚱뚱한 몸 때문에 발에 손이 잘 닿지 않아서 발끼리 서로 문대며 발을 닦았다는 시시콜콜한 일화까지 생생합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도 어린이들 걱정을 하며 ‘문밖에 나를 데리러 검은 마차와 검은 사람이 와있어’라는 말을 남겼다고 했을 때는 눈물이 핑 돌기도 했습니다.
방정환의 전기를 읽으면 한 명의 개구쟁이 소년이 청소년이 되고, 가난한 고학생이 새로운 배움과 뜻에 눈 뜨고, 한 청년이 온몸을 바쳐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주었고, 그러다 젊은 나이에 병을 얻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슬프고 감동적인 결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아동문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방정환 선생의 전기를 읽고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방정환 다시 새로 쓰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겠지만 그럴 때는 무엇보다 먼저 방정환 전기를 읽는 것부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방정환이 어떤 인물이며, 어떤 일생을 살았고, 어떤 뜻을 품고 살았는지를 알게 되면 방정환을 그리고, 되살리고, 방정환에게 바치는 이야기를 쓸 마음의 준비가 자연스레 갖춰질 것입니다.
2. 방정환을 되살린다면? 오늘 날 방정환의 후예는?
저에게 방정환은 ‘~선생님’ 처럼 멀고 어려운 이미지가 아니라 대중에게 인기 많은 연예인 같은 이미지가 있습니다. ‘방정환 선생이 지금 살아 계셨으면 유재석보다 열 배는 더 인기 많은 초통령이었을 거다’라고 말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방정환은 정치 선동가나 논객이 아니라 연극, 영화, 방송, 구연동화, 잡지 발간 등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뜻을 펼치는 활동가였습니다. 방정환은 당시 가장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트 세터의 면모를 갖고 있었습니다. 옛 자료가 잘 보존되지 않는 우리나라 사정 때문에 방정환의 구연동화 영상이나 라디오방송 자료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애석한 일입니다. (이런 영상, 음성 자료가 갑자기 오늘 발견되었다는 동화를 써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방정환이 21세기를 살았다면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MC나 유투버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요즘 인기 높다는 래퍼가 되었을지 누가 알까요?
하지만 결코 방정환이 어린이들에게 무익하거나 유해한 콘텐츠를 내놓았을 리는 없습니다. 필시 방정환은 지금, 여기 어린이들을 즐겁게 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궁리하고 상상해보는 것이 ‘방정환 새로 다시 쓰기’입니다.
방정환과 천도교의 관계를 참고해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천도교는 알다시피 사람을 하늘로 여기고, 그중에서도 가장 낮고 천대받는 사람을 높이 섬기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학대 받고 멸시받던 어린 아이를 ‘어린이’라 높이 부르며 어린이를 위한 문화운동을 펼쳤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날 가장 천대받고, 학대 받는 사람, 혹은 생명은 누구일까요? 그 대상을 찾아보는 것이 방정환의 뜻을 잇는 첫 걸음일 수 있습니다.
방정환은 당시 나라 잃은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국권을 회복한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이에 대한 문제가 아예 없을 리는 없습니다. 어쩌면 방정환이 오늘 살아 있다면 탈북하여 한국에 정착하는 새터민 어린이들, 해외에서 전쟁이나 내란으로 고향을 떠나 난민으로 떠도는 어린이들,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소외감을 갖는 어린이들에게 더 마음을 쏟지 않았을까요? 혹은 위안부 문제를 두고 어떤 생각을 갖고 활동을 펼쳤을까요? 분명한 것은 방정환은 이런 사안을 두고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젊은이들이야말로 살아 있는 방정환 선생의 후예일 수도 있습니다.
방정환의 민족정신이 21세기 한국에서는 어떻게 발현되는지 상상하고 이야기 속에서 실천해보는 것도 방정환 선생의 뜻을 되살리는 일일 것입니다.
3. 방정환의 작품, 캐릭터를 활용하기
방정환 다시 새로 쓰기는 크게 방향이 두 가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방정환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를 적극 활용하는 것, 두 번째는 방정환이 남긴 작품에서 모티프를 얻어 재창작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 방정환이라는 인물은 우리 역사에 실존한 인물 가운데 보기 드물게 재미있고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많이 남긴, 캐릭터성이 강한 인물입니다. 캐릭터성이 강한 인물은 어떤 상황에 가져다놓아도 그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본인이 만든 문제적 상황 안에 자유롭게 방정환을 가져다 놓으십시오. 그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방정환은 대중을 사로잡는 엄청난 이야기꾼이기도 했습니다. 방정환의 이야기꾼의 기질, 재능이 오늘 날 어떻게 꽃필 수 있는지 상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방정환이 남긴 작품에서 모티프를 얻어 재창작하는 일도 무궁무진합니다. 방정환은 옛이야기나 외국 동화를 우리나라 현재 실정으로 바꿔 재화하는 데 무척 능수능란했습니다. (시골쥐 서울쥐, 산드룡의 구두 등) 방정환을 꼭 닮은 「만년샤쓰」의 창남이는 우리 아동문학이 낳은 초긍정의 소년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탐정소설 「동생을 찾으러」나 『칠칠단의 비밀』도 얼마든지 현대식으로 다시 쓸 수 있는 소재가 풍부합니다. 패러디도 좋고, 오마주도 좋고, 트리뷰트(헌정)도 좋습니다. 외전, 시퀄, 프리퀄 등 다양한 방법도 있습니다.
방정환이라는 위인, 업적에 짓눌리지 말고 자유롭게 변형하며 이야기로 노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방정환 선생도 필시 그 작업을 기꺼워하실 것입니다.
4. 계간 창비어린이의 권정생 10주기 특집 참고
제가 이 자리에서 방정환 다시 새로 쓰기의 방법에 대해 설명하게 된 까닭은, 제가 관여하고 있는 계간 『창비어린이』라는 잡지에서 얼마 전 고(故) 권정생 동화 작가에 대한 헌정 동화 특집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권정생 선생 10주기를 맞이한 자리에서 평범한 추모를 하기보다 그 분의 뜻을 지금 동화 작가들이 계속 이어가는 이야기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고 좋은 작품을 모을 수 있습니다. 청탁한 작가들에게는 자세한 설명을 하기보다 ‘권정생의 뜻을 현재에 잇고, 권정생 작품의 인물이나 모티프를 자유롭게 활용한 이야기’면 무엇이든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나온 작품은 이러합니다.
- 김기정(오소리네 시냇가) : ‘오소리네 꽃밭’ 캐릭터로 4대강 사업 비판
- 김중미(꽃섬 고양이) : 길고양이판 몽실 언니
- 안미란(황금 닭과 밥데기 죽데기) : ‘밥데기 죽데기’ 주인공들이 어느 초등학교에 등장하여 수탉을 해방시킨다.
- 유은실(송아지똥) : ‘강아지 똥’만 있느냐 ‘송아지 똥’도 있다.
- 임정자(복자할머니) : ‘사과나무밭 달님’ 주인공과 닮은 할머니와 세월호 비극의 접목.
잡지에 실렸던 까닭에 각 작품들의 길이는 원고지 30매 내외이고 주로 짧은 동화, 의인동화 위주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고인이 이 시대에 살아 있다면 썼음직한 이야기, 혹은 고인도 함께 즐거워할 이야기, 고인의 뜻을 이 시대에 잇고 더욱 확장시키는 이야기들이었기에 ‘헌정 동화’의 뜻은 충분히 성취되었다고 평가합니다.
방정환 다시 새로 쓰기는 이보다 훨씬 길이나 내용의 자유가 보장되므로 더욱 풍성한 이야기의 장이 펼쳐지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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